서론
카카오톡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친구들과 연락하고, 택시 부르고, 음식 주문하고... 거의 모든 일상이 카카오 앱으로 연결되어 있잖아. 이 모든 걸 만든 사람이 김범수인데, 사실 이 사람이 한게임도 만든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 2000년대 초반 PC방에서 한게임 포커 치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그 회사 만든 사람이 지금의 카카오까지 만들었다니. 정말 한국 IT 역사의 산증인 같은 인물이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그리고 삼성의 평범한 직장인
김범수는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는데, 그냥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고 한다. 특별히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집안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잘했다고. 198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인데, 그때는 아직 컴퓨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김범수는 일찍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1985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로서는 정말 엘리트 코스였지. 서울대 공대라면 졸업 후 대기업 취직이 보장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실제로 김범수도 그 길을 따라갔다.
대학 시절에는 별로 특별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학생운동이나 창업 같은 건 안 했고, 그냥 성실하게 공부만 한 학생이었나 보다. 군대도 다녀오고.
1991년 졸업하고 삼성 SDS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 SDS는 삼성그룹의 IT 계열사로 막 성장하기 시작하던 회사였다. 시스템 통합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같은 일을 했는데, 김범수는 여기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IT 업무를 경험했다.
삼성에서 8년 정도 일했는데, 나름 승진도 잘 하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1990년대 말이 되면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김범수도 이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을 거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평생직장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창업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나 보다. 삼성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1999년 한게임 창업, 그리고 온라인 게임의 시작
1999년 김범수는 삼성을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했다. 동료들과 함께 한게임이라는 회사를 만든 거다. 당시 나이가 33세였는데, 요즘 기준으로는 늦은 창업이지만 그때로서는 적당한 나이였을 거다.
한게임의 아이디어는 "온라인에서 함께 하는 보드게임"이었다. 포커, 고스톱, 바둑 같은 게임을 인터넷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였다. 지금 보면 당연한 아이디어 같지만, 1999년에는 정말 혁신적이었다.
당시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ADSL이나 케이블 인터넷이 나오면서 집에서도 빠른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됐거든. 김범수는 이 변화를 일찍 포착한 거다.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다고 한다. 사무실도 작았고, 직원도 몇 명 없었다. 서버도 자주 다운됐고, 사용자들 불만도 많았다. 하지만 점차 사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PC방 붐과 맞물린 게 큰 도움이 됐다. 2000년대 초반 PC방이 전국에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사람들이 PC방에서 한게임을 많이 했거든. 포커나 고스톡 같은 게임이 인기였다.
2000년 닷컴 버블이 터졌을 때도 한게임은 살아남았다.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망했지만, 한게임은 실제 사용자가 있었고 수익 모델도 있었거든. 유료 아이템이나 광고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NHN과의 합병, 그리고 네이버 시대
2000년 한게임은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과 합병했다. 당시 네이버는 검색 서비스로 성장하고 있었고, 한게임은 게임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둘이 합쳐지면 시너지가 날 거라고 본 거다.
합병 후 김범수는 NHN의 공동대표가 됐다. 이성호 대표와 함께 회사를 이끌었는데, 이성호는 검색 쪽을, 김범수는 게임 쪽을 담당했다. 역할 분담이 잘 됐던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NHN은 정말 잘나갔다. 네이버는 한국 최대 포털사이트가 됐고, 한게임도 온라인 게임의 대명사가 됐다. 카트라이더나 메이플스토리 같은 히트작들이 연이어 나왔다.
그런데 2010년쯤 되니까 모바일 시대가 시작됐다. 아이폰이 나오고 안드로이드폰이 나오면서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했거든. 기존 PC 중심의 서비스들이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의 탄생, 모바일 시대의 혁신
2010년 김범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NHN을 떠나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한 거다.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에도 메신저는 있었다. MSN 메신저나 네이트온 같은 게 있었지만, 대부분 PC용이었다. 모바일에 특화된 메신저는 거의 없었거든. 김범수는 여기서 기회를 본 거다.
2010년 9월 카카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문자 메신저였는데, 무료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출시 초기에는 사용자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층에서 인기가 높았는데, "카톡"이라는 줄임말도 그때 생겼다.
2012년쯤 되니까 카카오톡이 한국의 대표 메신저가 됐다. 사용자 수가 수천만 명을 넘어섰고, 일일 메시지 수도 수십억 건에 달했다. 정말 폭발적인 성장이었다.
카카오톡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였다. 우선 사용하기 쉬웠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바로 친구 추가할 수 있었거든. 또한 재미있는 이모티콘들도 인기 요인이었다.
플랫폼으로의 진화
김범수는 카카오톡을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2012년부터 다양한 기능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카카오게임, 카카오스토리, 카카오뮤직 같은 서비스들이 연이어 나왔다. 모두 카카오톡과 연동되는 서비스들이었는데, 사용자들이 카카오 생태계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특히 카카오페이가 큰 성공을 거뒀다. 2014년에 출시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데, 카카오톡 안에서 바로 송금이나 결제를 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한국인 대부분이 쓰는 서비스가 됐다.
다음과의 합병, 그리고 카카오의 완성
2014년 김범수는 또 한 번 큰 결정을 내렸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하기로 한 거다. 다음은 한때 네이버와 함께 한국의 양대 포털이었지만,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어려워지고 있었다.
합병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기업 문화도 다르고, 사업 영역도 겹치는 부분이 있었거든. 하지만 김범수는 "모바일과 웹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했다.
합병 후 회사 이름이 카카오가 됐다. 김범수가 대표이사가 되고, 다음의 기존 서비스들도 카카오 브랜드로 통합했다. 다음 검색, 다음 카페 같은 서비스들이 카카오로 바뀐 거다.
2015년부터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에 본격 진출했다. 카카오택시가 그 시작이었는데, 택시를 앱으로 부를 수 있는 서비스였다. 처음에는 택시업계의 반발이 심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이어서 카카오드라이버, 카카오바이크, 카카오T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들이 나왔다. 김범수의 비전은 "카카오 하나면 모든 이동이 해결되는 세상"이었다.
2017년에는 카카오뱅크도 출시했다. 인터넷 전문 은행인데, 출시 첫날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기존 은행들보다 편리하고 수수료도 저렴했거든.
김범수의 경영 철학
김범수의 경영 철학은 "사용자 경험"이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사용자가 불편하면 의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카오 서비스들은 대부분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또한 "연결"에 대한 철학도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서비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게 카카오의 역할이라고 봤다. 메신저에서 시작해서 플랫폼으로 발전한 것도 이런 철학 때문이었다.
"빠른 실행"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완벽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출시하고 개선해나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카카오 서비스들은 업데이트가 자주 됐다.
상장과 논란, 그리고 현재
2017년 카카오가 다시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미 2010년에 한 번 상장했었는데, 다음과 합병하면서 상장폐지됐다가 다시 상장한 거였다. 상장 첫날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넘었다.
김범수도 억만장자가 됐다. 카카오 지분만 해도 수조원 가치였으니까. 1999년 한게임으로 시작해서 거의 20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성공과 함께 논란도 따라왔다. 카카오의 시장 지배력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거든. "카카오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특히 2021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카카오톡이 몇 시간 동안 먹통이 되면서 전국이 마비 상태가 됐거든. 그때 카카오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김범수는 이런 비판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ESG 경영이나 상생 협력에 더 신경쓰겠다고 약속했다.
2022년에는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여전히 카카오 이사회 의장으로 있지만, 일선 경영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선 거다.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투자자로서의 새로운 도전
요즘 김범수는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K큐브홀딩스라는 투자회사를 만들어서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AI나 블록체인 같은 새로운 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해외 투자도 늘리고 있다. 동남아시아나 미국의 스타트업들에도 투자하고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더 활약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한국 IT 역사의 산증인
김범수를 보면서 느끼는 건, 정말 한국 IT 발전과 함께 성장한 사람이라는 거다. 1990년대 인터넷 시대에는 온라인 게임을, 2010년대 모바일 시대에는 메신저와 플랫폼을 만들었다.
특히 시대 변화를 읽는 능력이 뛰어났다.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시점을 정확히 포착해서 카카오톡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만약 그때 변화를 놓쳤다면 지금의 카카오는 없었을 거다.
사용자 중심 사고도 인상적이다. 기술자 출신이지만 항상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뭘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카카오 서비스들이 대부분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쉽다.
개인적으로는 겸손한 편이라고 한다. 억만장자가 됐지만 여전히 소탈하게 산다고. 회사에서도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낸다고 하더라.
취미는 독서와 사진이라고 한다. 특히 인문학 책을 많이 읽는다는데, "기술만으로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자선활동도 하고 있다. 카카오임팩트라는 재단을 만들어서 사회 문제 해결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청년 창업 지원이나 디지털 격차 해소에 관심이 많다고.
김범수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한국인의 소통 방식을 바꾼 거다. 카카오톡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큰 변화였잖아. 이제는 "카톡 보냈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됐으니까.
물론 독점적 지위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 IT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 특히 모바일 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기업가로 기억될 것 같다.
앞으로도 어떤 새로운 혁신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미 5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하니까. 다음 세대를 위한 멘토 역할을 하면서도, 본인만의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