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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리니지로 한국 게임 역사를 쓴 전설적인 개발자

wanbonga 2025. 6. 20. 08:01

김택진
김택진

서론

리니지라는 게임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거다. 2000년대 초반 PC방을 지배했던 게임이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이 김택진인데, 정말 한국 게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그냥 게임 개발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NCSOFT라는 거대한 게임 제국을 만든 진짜 대단한 사람이더라. 어떻게 서울대 컴공과 출신이 한국 게임 산업의 아버지가 됐는지 정말 흥미로웠다.

서울대 컴공과에서 꿈꾼 게임 세상

김택진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회사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는데,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고 한다. 딱히 게임이나 컴퓨터와 관련된 집안 배경은 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정말 잘했다고. 198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인데, 그때는 컴퓨터가 정말 희귀했다. 하지만 김택진은 학교에 있던 몇 대 안 되는 컴퓨터를 보고 완전히 매료됐다고 한다.

특히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에는 테트리스나 팩맨 같은 단순한 게임들이 전부였는데, 김택진은 "이런 걸 내가 직접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한 꿈이었다.

1987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서울대 컴공과는 정말 들어가기 어려운 과였다. 컴퓨터 사이언스 자체가 새로운 분야였고, 미래가 밝다고 여겨지던 시절이었거든.

대학 시절 김택진은 정말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이 술 먹고 놀 때도 혼자 컴퓨터실에서 코딩하고 있었다고. 특히 그래픽이나 3D 렌더링 같은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1991년 졸업하고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현대전자는 반도체나 컴퓨터 사업을 하던 회사였는데, 김택진은 거기서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계속 게임 개발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회사 다니면서도 개인적으로 작은 게임들을 만들어봤다고 한다.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는데, 김택진은 "앞으로 PC 게임 시장이 클 거다"라고 확신했다고.

1997년 NCSOFT 창업, 그리고 리니지의 기적

1997년 김택진은 현대전자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했다. NCSOFT라는 회사를 만든 거다. NC는 "Nexus of Creativity"의 줄임말이었는데, "창의성의 결합점"이라는 뜻이었다고. 꽤 거창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무실도 작았고, 직원도 몇 명 안 됐다. 창업 자금도 부족해서 김택진이 개인적으로 대출받은 돈으로 회사를 운영했다고. 정말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바람의 나라"라는 MMORPG였다. 당시 한국에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거든. 대부분 패키지 게임이었고, 온라인으로 여러 명이 동시에 하는 게임은 거의 없었다.

바람의 나라는 1996년에 출시됐는데, 한국 최초의 상용 온라인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사용자가 별로 없었지만,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컴퓨터로 여러 명이 함께 게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던 거다.

하지만 진짜 대박은 1998년 리니지였다. 김택진이 총괄 기획하고 개발한 게임인데, 출시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 온라인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이 된 거다.

리니지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였다. 우선 그래픽이 당시로서는 정말 뛰어났다. 2D 아이소메트릭 방식이었는데, 캐릭터들이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또한 PK(Player Kill) 시스템이 있어서 플레이어끼리 싸울 수 있었는데, 이게 엄청난 재미를 줬다.

PC방 문화와 함께한 성장

리니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PC방 문화와 맞아떨어진 것도 있었다. 1990년대 말 PC방이 전국에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사람들이 PC방에서 리니지를 하기 시작한 거다.

특히 혈맹 시스템이 인기였다. 게임 내에서 길드 같은 조직을 만들 수 있었는데, 현실에서도 혈맹원들이 만나서 술 먹고 그랬다고.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된 거다.

당시 "리니지 하느라 회사 지각했다"는 얘기가 정말 많았다. 밤새도록 레벨업하고 아침에 그대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거든. 사회 현상이 될 정도였다.

김택진도 이런 현상에 놀랐다고 한다. "게임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 줄은 몰랐다"면서. 하지만 동시에 "한국인들이 정말 게임을 좋아한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고.

글로벌 진출과 리니지2의 도전

2000년대 초반 김택진은 해외 진출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리니지가 한국에서 성공했으니까, 다른 나라에서도 될 거라고 본 거다. 특히 대만이나 중국 같은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많았다.

2001년 대만에 리니지를 출시했는데,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꽤 성공했다. 이어서 중국, 일본에도 진출했다. 한국 게임이 해외에서 성공한 초기 사례 중 하나였다.

하지만 김택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야심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거든. 바로 리니지2였다. 3D 그래픽을 사용한 차세대 MMORPG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리니지2 개발에는 정말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갔다.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3D 엔진을 사용했고, 캐릭터 모델링도 엄청 정교했다. 개발비만 수백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2003년 리니지2가 출시됐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래픽이 정말 혁신적이었거든. 기존 온라인 게임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사전 예약만 50만 명이 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초기에는 문제도 많았다. 서버가 자주 다운됐고, 접속도 어려웠다. 사용자들 불만이 엄청났다. 김택진은 "죄송하다"며 밤낮없이 서버 안정화 작업을 했다고.

아이온과 새로운 도전

2008년에는 아이온이라는 또 다른 MMORPG를 출시했다. 이번에는 "비행"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게임이었다. 캐릭터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게 큰 차별화 포인트였다.

아이온도 성공했다. 특히 그래픽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게임이 아니라 영화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택진의 기술력이 또 한 번 입증된 거다.

하지만 이때쯤 되니까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기 시작했다. 경쟁작들도 많이 나왔고, 사용자들도 새로운 재미를 찾기 시작했거든. 김택진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길드워즈와 서구 진출의 야망

2005년 김택진은 정말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미국에 ArenaNet이라는 자회사를 만들고, 서구 시장을 겨냥한 게임을 개발하기로 한 거다. 그 결과가 바로 길드워즈였다.

길드워즈는 기존 MMORPG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월정액이 없고, 패키지로만 판매하는 방식이었거든.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김택진이 직접 미국에 가서 개발을 지휘했다. 서구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배우려고 했다고. 문화 차이도 크고 언어 장벽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5년 길드워즈가 출시되자마자 서구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월정액 없는 MMORPG라는 콘셉트가 서구 게이머들에게 어필한 거다. 출시 첫 주에 100만 카피가 팔렸다고 한다.

길드워즈의 성공으로 김택진은 "한국 게임도 서구에서 통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길드워즈2까지 개발해서 지금도 서구에서 인기 있는 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서구 진출이 쉽지만은 않았다. 문화 차이도 크고, 현지 마케팅도 어려웠다. 김택진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현지화가 정말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모바일 게임 시대의 적응

2010년대 들어서 모바일 게임 시대가 시작됐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게임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거다. 김택진도 이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리니지M, 리니지2M 같은 모바일 버전들을 출시했다. PC에서 하던 게임을 스마트폰으로 옮긴 거였는데, 반응이 좋았다. 특히 기존 리니지 유저들이 많이 유입됐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개발은 PC 게임과 완전히 달랐다. 조작 방법도 다르고, 과금 시스템도 달랐다. 김택진은 "새로운 공부를 다시 해야 했다"고 말했다.

AI와 미래 기술 투자

최근 김택진은 AI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게임 개발에 AI를 활용하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이미 여러 AI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NPC(Non-Player Character) AI에 투자하고 있다. 기존에는 단순한 패턴으로만 움직이던 NPC들이, AI를 통해 마치 진짜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게 하려는 거다. 실현되면 정말 혁신적일 것 같다.

블록체인 기술에도 관심이 있다. NFT를 게임에 접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게이머들에게 진짜 재미를 주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고사양 게임을 저사양 기기에서도 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인데, 5G 시대와 맞물려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 같다.

VR이나 AR 게임에도 투자하고 있다. 아직은 시장이 작지만, "10년 후에는 게임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미리 준비하는 차원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차세대 개발자 양성

김택진은 요즘 후배 개발자 양성에도 신경쓰고 있다. NCSOFT 내에 게임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젊은 개발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한국 게임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취지다.

또한 게임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며 현장 중심 교육을 강조한다.

게임 산업의 아버지, 그 뒤의 인간 김택진

김택진을 보면서 느끼는 건, 정말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지금도 새로운 게임들을 직접 해보고, 어떤 게 재미있는지 연구한다고 한다. 50대 중반인데도 여전히 게이머 마음을 갖고 있다.

"기술보다 재미가 먼저"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재미없으면 의미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NCSOFT 게임들은 대부분 재미 위주로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소탈한 편이라고 한다. 억만장자가 됐지만 여전히 검소하게 산다고. 회사에서도 직원들과 격의없이 지내고, 가끔 직접 게임 개발에도 참여한다고.

취미는 독서와 음악이다. 특히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음악을 들으면 게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또한 SF 소설도 즐겨 읽는다고 하는데, 미래 기술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가족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데, 바쁜 중에도 가족과의 시간을 꼭 갖는다고 한다. "가족이 있어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 공헌 활동도 하고 있다. 특히 게임 중독 예방이나 올바른 게임 문화 조성에 관심이 많다. "게임이 악영향을 주면 안 된다"며 건전한 게임 환경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다.

김택진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한국을 "게임 강국"으로 만든 거다. 리니지 이전에는 한국이 게임으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었거든. 지금은 전 세계에서 한국 게임의 위상이 높아졌다.

또한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게임, 가상 세계에서의 소통, 이런 개념들이 지금은 당연하지만 김택진이 없었다면 아마 훨씬 늦어졌을 거다.

물론 게임 중독이나 과도한 과금 같은 부작용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 문화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평가받는다.

앞으로도 어떤 혁신적인 게임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미 50대 중반이지만 아직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고 하니까. 한국 게임 산업의 아버지로서 계속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갈 것 같다.

게임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김택진. 그의 다음 작품이 또 어떤 놀라움을 줄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