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영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기업가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리처드 브랜슨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버진 그룹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그는 단순히 성공한 사업가를 넘어서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로 자리잡았다. 난독증을 앓고 있던 고등학교 중퇴자가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16세 소년이 시작한 첫 번째 도전
1950년 7월 18일 런던에서 태어난 리처드 브랜슨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선천적 난독증으로 인해 학업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이를 장애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기르게 되었고, 이는 후에 그만의 독특한 사업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16세가 되던 1967년, 브랜슨은 학교를 그만두고 학생 잡지 '스튜던트'를 창간했다. 이는 단순한 학교 신문이 아니라 진짜 언론매체를 지향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 어린 편집장은 존 레논,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세계적 인물들의 인터뷰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 현장 취재를 위해 메이저 신문사로부터 취재비 지원까지 받아냈다.
이 시기부터 브랜슨의 특징적인 행동 양식이 나타났다. 그는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시작하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철저한 준비와 과감한 실행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스튜던트 잡지는 비록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브랜슨에게는 귀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중고 레코드에서 시작된 버진 제국
잡지 사업으로 번 돈을 바탕으로 브랜슨은 1970년 우편주문 레코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젊은 학생들이 레코드를 구매하기 어려운 상황을 파악한 그는 이를 기회로 보았다. '버진(Virgin)'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도 그들이 사업에 '처녀'라는 의미에서였다.
1971년에는 런던 중심가에 첫 번째 버진 레코드 매장을 열었고, 이듬해에는 녹음 스튜디오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1973년,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마이크 올드필드의 앨범 'Tubular Bells'를 발매한 것이다. 이 앨범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성공을 거두며 버진 레코드를 단숨에 메이저 레이블로 끌어올렸다.
이후 버진 레코드는 섹스 피스톨즈, 컬처 클럽, 필 콜린스 등 수많은 스타들과 계약하며 음악 업계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브랜슨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음악에서 시작해서 항공, 철도, 모바일, 우주여행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하늘로 향한 도전, 버진 애틀랜틱의 탄생
브랜슨의 가장 유명한 사업 모험 중 하나는 1984년 시작된 버진 애틀랜틱 항공이다. 흥미롭게도 이 사업의 시작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휴가 중 푸에르토리코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되자, 브랜슨은 직접 비행기를 빌려 다른 승객들과 함께 목적지로 향했다. 이때 칠판에 "버진 항공사. 푸에르토리코행 편도 39달러"라고 적어 놓았는데, 이것이 버진 항공의 실질적인 시작이었다.
당시 영국의 항공 시장은 브리티시 에어웨이즈가 독점하다시피 하던 상황이었다. 신생 항공사가 끼어들기에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지만, 브랜슨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승부를 걸었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 혁신적인 기내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브랜드 이미지로 승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브랜슨 자신이 직접 나서는 파격적인 마케팅도 큰 화제가 되었다. 그는 스튜어디스 복장을 입고 직접 서비스를 하거나, 탱크를 몰고 뉴욕 한복판에서 버진콜라를 홍보하는 등 기존 CEO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쇼맨십'은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서서 버진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다각화 전략
브랜슨의 사업 철학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업종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악에서 시작해서 항공, 철도, 휴대폰, 음료, 금융, 우주여행에 이르기까지 손대는 사업마다 '버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일반적인 경영학 이론과는 정반대되는 접근법이었다.
많은 경영 전문가들은 "한 분야에 집중하라"고 조언하지만, 브랜슨은 이를 무시하고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비결은 각 분야마다 해당 업계의 최고 전문가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분야는 인정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되 버진의 브랜드 가치와 고객 서비스 철학을 접목시키는 방식이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버진콜라는 코카콜라와 펩시의 벽을 뚫지 못하고 철수했고, 버진 브라이드(웨딩드레스 사업)같은 일부 사업들도 문을 닫았다. 하지만 브랜슨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에서 배우고 다음 도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는 경영 철학
브랜슨의 경영 철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직원에 대한 태도다. 그는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사고방식이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이 왕"이라고 외치던 시절에, 브랜슨은 "직원이 먼저, 고객이 그 다음"이라는 파격적인 순서를 제시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빠졌을 때도 브랜슨은 직원들에게 "아무도 해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인간적인 경영 방식은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였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고객 서비스로 이어졌다.
또한 그는 회사 내에서 격식을 차리지 않는 수평적 문화를 만들어갔다. 정장 대신 캐주얼한 복장을 즐겼고, 직원들과 함께 춤을 추거나 파티를 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펀(Fun) 리더십'은 버진 그룹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형성했다.
메모광이 된 난독증 환자
브랜슨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놀랍게도 그의 '메모 습관'이다. 난독증으로 인해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회의 중에, 비행기 안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메모를 했다.
"버진그룹에는 메모하는 문화가 있다. 이 문화가 없었다면 오늘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버진 항공의 아이디어도 작은 메모 한 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메모장에는 수많은 사업 아이디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실제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발전했다.
우주를 향한 새로운 도전
70대에 접어든 지금도 브랜슨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2004년 설립된 버진 갤럭틱을 통해 그는 민간 우주여행 사업에 뛰어들었다. 2021년 7월, 그는 직접 우주선에 탑승해 지구 상공 88.5km까지 올라가며 민간인 우주여행의 새 지평을 열었다.
25만 달러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미 700여 명이 우주여행 티켓을 구매했다. 브래드 피트를 비롯한 유명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브랜슨은 "누구나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가격을 점차 낮춰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리처드 브랜슨이 어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지 정말 궁금하다. 그의 인생 자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왜 안 하는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난독증이라는 장애와 고등학교 중퇴라는 학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