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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블룸버그 - 데이터로 세계를 바꾼 남자

wanbonga 2025. 6. 9. 07:41

마이클 블룸버그
마이클 블룸버그

 

서론

경제 뉴스를 보다 보면 "블룸버그"라는 이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대부분은 그냥 회사 이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것은 한 사람의 성에서 따온 것이다. 바로 마이클 블룸버그라는 인물 말이다.

이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인 미디어 제국을 건설하고, 심지어 뉴욕 시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현실판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시작에서 비범한 결과까지

마이클 블룸버그는 1942년 보스턴 근처의 작은 동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인 이민자 1세대였고, 어머니는 2세대였다. 특별할 것 없는 중산층 가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면이 있었다. 12살에 미국에서 가장 어린 이글 스카우트가 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전자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유난했던 것 같다.

존스홉킨스대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했는데, 성적은 평범했다. C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리더십은 뛰어났다. 하버드에서 MBA까지 따고 1966년에 살로몬 브러더스라는 투자은행에 입사했다.

월스트리트에서 깨달은 것들

살로몬 브러더스에서 15년 넘게 일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직원이었지만, 점점 승진해서 파트너까지 올랐다. 그런데 1981년, 갑자기 회사가 인수되면서 해고당했다.

39살의 나이였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좌절하기 마련인데, 블룸버그는 달랐다. 퇴직금으로 받은 1천만 달러 중 400만 달러를 투자해서 창업을 결심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늘 불편했던 점이 있었다. 금융 정보를 얻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주식 가격이나 시장 정보를 알려면 신문을 보거나 전화로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실현

"이걸 컴퓨터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지금 보면 당연한 아이디어 같지만, 1981년에는 정말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동료 3명과 함께 IMS(Innovative Market Systems)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금융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단말기를 개발했다. 처음에는 22대를 메릴린치에 팔았는데, 이게 대성공이었다.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볼 수 있는 단말기라니, 월스트리트가 뜨거워졌다. 24시간 꺼지지 않고, 세계 어디서든 금융 정보를 볼 수 있었다. 트레이더들에게는 꿈같은 도구였다.

블룸버그 제국의 탄생

1986년에 회사 이름을 지금의 '블룸버그'로 바꿨다. 단순히 정보 제공을 넘어서 뉴스, 라디오, TV까지 확장했다.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블룸버그의 대단한 점은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데이터'의 가치를 일찍 알아본 것이다. 지금이야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 없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확신했다. "데이터가 곧 돈이다"라고. 그 확신이 맞았다. 지금 블룸버그 단말기는 전 세계 35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고, 한 대당 월 사용료가 수천 달러다.

독점적인 비즈니스 모델

정말 엄청난 사업이다. 한번 고객이 되면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 금융 업계에서는 블룸버그 단말기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이 바로 독점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힘이다.

현재 전 세계 100개국에 특파원 1,000명을 포함해 8,0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하루 4,500건 이상의 뉴스를 공급하며 91개국 14만 명의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

그런데 이미 억만장자가 된 블룸버그가 2001년에 놀라운 선택을 했다. 뉴욕 시장 선거에 나선 것이다. 왜 굳이 시장을 하려고 했을까?

때가 때였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났다. 뉴욕이 완전히 충격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때 블룸버그가 "사업가 출신인 내가 뉴욕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선거에서는 자기 돈을 아낌없이 썼다. 상대방보다 5배나 많은 선거 자금을 투입했다. 결과는 승리였다. 뉴욕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당 시장이 연속으로 당선되었다.

CEO 스타일의 시정 운영

블룸버그는 정말 독특한 시장이었다. 기업 CEO처럼 시를 운영했다. 데이터를 중시하고, 효율성을 추구하고, 성과로 평가했다.

취임하자마자 과감하게 재산세를 18.5%나 올렸다. 보통 정치인이라면 절대 안 할 일이다. 표가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블룸버그는 달랐다. "뉴욕을 살리려면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그 돈으로 벤처기업들을 뉴욕으로 유치했다. 스타트업들에게는 임대료를 90% 할인해주고, 인큐베이터를 만들어서 창업을 지원했다. 범죄의 온상이었던 할렘가를 바이오벤처 단지로 바꿔놓기도 했다.

12년간의 성공적인 시정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뉴욕이 테러 이후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오히려 더 강한 도시가 되었다. 범죄율도 줄어들고, 경제도 살아나고, 교육도 개선되었다.

블룸버그는 3선까지 했다. 뉴욕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리고 12년 동안 공식 휴가를 한 번도 안 갔다고 한다. 정말 일벌레였다.

게다가 시장 연봉 270만 달러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돈 5억 5천만 달러를 뉴욕을 위해 썼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준 것이다.

대통령의 꿈과 현실

2016년에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했다. 측근들에게 선거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까지 했고, 최소 10억 달러를 선거에 쓸 준비도 했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3파전이 되면 오히려 강경 보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야망을 포기한 것이다.

2020년에는 실제로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뒤늦게 출마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여전히 현역인 80대 거물

마이클 블룸버그는 지금 80세가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블룸버그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순위 7위에 올라 있다.

최근에는 AI 기술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ChatGPT와 유사한 '블룸버그 GPT'도 발표했다. 시대 흐름을 읽는 능력이 여전히 탁월하다.

그리고 자선 활동도 엄청나게 한다. 블룸버그 필랜트로피를 통해 기부도 하고,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이다. 모든 면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블룸버그에게서 배우는 교훈들

마이클 블룸버그 이야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기회를 보는 눈이다.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데이터의 가치를 일찍 알아봤다.

둘째는 과감함이다. 39살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확신이 서면 과감하게 행동했다.

셋째는 끊임없는 도전 정신이다. 사업에서 성공했으면 그냥 편히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정치까지 뛰어들었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찾는 사람이다.

시대를 앞서간 혁신가

블룸버그는 정말 현대판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준 사람이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수성가로 세계적인 부자가 되고, 정치인으로도 성공하고, 자선가로도 활동한다.

특히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AI 같은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소 보여준다.

데이터의 가치를 일찍 알아보고 그것을 사업으로 성공시킨 블룸버그의 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 앞으로도 그의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