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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알트먼, 20대에 회사를 팔고 30대에 AI 혁명을 이끄는 남자

wanbonga 2025. 6. 13. 09:00

 

샘 알트먼
샘 알트먼

서론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친구들과 몇 시간씩 대화해보면서 "이게 정말 AI가 한 말이야?"라고 서로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걸 만든 OpenAI라는 회사에 대해 찾아봤는데, CEO가 샘 알트먼이라는 사람이더라. 처음엔 그냥 기술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완전히 다른 타입의 사람이었다. 기술보다는 비즈니스와 투자 쪽 배경이 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AI 혁명의 선두에 서게 됐는지 정말 궁금했다.

시카고 부르주아 가정의 아들

샘 알트먼은 1985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동산 개발업자였고 어머니는 피부과 의사였는데, 전형적인 상류층 가정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알트먼의 어린 시절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8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는데, 이게 그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성격이 강했고, 뭔가 자기만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배웠는데, 특별히 천재적이었다기보다는 그냥 꾸준히 열심히 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코딩 교육이 보편적이지 않았는데, 혼자서 책 보고 인터넷 찾아가면서 배운 거다.

스탠포드 입학과 중퇴

2003년 알트먼은 스탠포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전공은 컴퓨터 사이언스였는데, 사실 그때까지는 그냥 평범한 공대생이었을 거다. 특별히 두각을 나타낸 것도 없었고.

하지만 대학 생활 중에 알트먼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실제로 뭔가를 만드는 게 더 재미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룸메이트들과 함께 작은 프로젝트들을 시작했다.

2005년, 알트먼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스탠포드를 중퇴하고 창업하기로 한 거다. 당시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했다고 한다. "좋은 대학 다니면서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고. 하지만 알트먼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첫 창업, Loopt의 시행착오

알트먼이 룸메이트와 함께 만든 첫 번째 회사가 Loopt였다.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였는데, 지금 보면 카카오톡 위치 공유나 인스타그램 위치 태그 같은 거였다. 2005년 당시로서는 꽤 앞서간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우선 기술적 문제가 많았다. GPS가 지금처럼 정확하지 않았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사용자들은 복잡한 설정을 해야 했고, 배터리도 금세 떨어졌다.

그래도 알트먼은 포기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니고, 제품을 계속 개선했다. Y 컴비네이터의 첫 번째 배치에도 선정됐는데, 이게 알트먼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결국 Loopt는 2012년에 Green Dot이라는 회사에 4천 3백만 달러에 매각됐다. 대박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더 중요한 건 알트먼이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 생태계의 모든 걸 배웠다는 거다.

Y 컴비네이터 입성

Loopt를 매각한 후 알트먼은 잠시 쉬면서 다음에 뭘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Y 컴비네이터의 폴 그레이엄이 연락을 해왔다. Y 컴비네이터에서 파트타임 파트너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Y 컴비네이터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스트라이프 같은 회사들이 모두 여기 출신이다. 알트먼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처음에는 그냥 멘토 역할이었다. 스타트업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투자자들을 소개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알트먼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사업 모델이나 마케팅 전략에 대한 조언이 뛰어났다고 한다.

2014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폴 그레이엄이 Y 컴비네이터의 대표 자리를 알트먼에게 넘긴 거다. 당시 알트먼은 겨우 28세였는데,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의 수장이 된 셈이었다.

Y 컴비네이터 대표 시절

알트먼이 Y 컴비네이터 대표가 되면서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투자 규모를 대폭 늘렸다. 기존에는 한 배치당 50-60개 회사였는데, 100개 이상으로 늘렸다. 투자 금액도 기존 2만 달러에서 12만 달러로 늘렸다.

또한 프로그램 내용도 체계화했다. 단순히 돈만 주는 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했다. 세일즈 교육, 기술 지원, 법무 자문 등 스타트업이 필요한 모든 걸 패키지로 제공했다.

알트먼의 가장 큰 변화는 "스케일"에 대한 강조였다.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말고, 정말 큰 시장을 노리라고 계속 강조했다. "10억 달러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인가?"라는 질문을 항상 던졌다.

실제로 알트먼 시절 Y 컴비네이터에서 나온 회사들의 가치 총합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스트라이프, 에어비앤비, 도어대시 같은 회사들이 모두 이 시기에 성장했다.

OpenAI와의 인연

2015년, 알트먼의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왔다. 일론 머스크, 피터 틸 등과 함께 OpenAI를 공동 창립하게 된 거다. 당시에는 "인공지능의 안전한 개발"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목표로 시작했다.

처음에 OpenAI는 비영리 조직이었다. "AI가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개발되어야 한다"는 철학이었는데, 꽤 이상주의적이었다. 알트먼도 처음에는 그냥 자문위원 정도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트먼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자금 조달이나 전략 수립에서 그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Y 컴비네이터에서 배운 스타트업 운영 노하우가 여기서도 통했던 거다.

2019년, 알트먼은 Y 컴비네이터 대표직을 그만두고 OpenAI에 전념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자리를 버리고 불확실한 AI 스타트업에 올인한다고?

OpenAI 전성시대

알트먼이 OpenAI CEO가 되면서 회사는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조직 구조를 바꿨다. 기존의 비영리 조직에서 "제한적 영리" 조직으로 전환했다. 투자도 받고 수익도 추구하되, 일정 한도를 넘지 않겠다는 거였다.

이 결정은 꽤 논란이 됐다. 창립 멤버 중 일부는 "초심을 잃었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알트먼은 "현실적으로 AI 개발에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OpenAI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이 돈으로 GPT-3, GPT-4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을 개발할 수 있었다. 만약 비영리로만 운영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2022년 11월 ChatGPT가 출시되면서 OpenAI는 완전히 달라졌다. 출시 2개월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이었다.

ChatGPT 신드롬

ChatGPT의 성공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챗봇 정도로 생각했는데, 써보니까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복잡한 질문에도 논리적으로 답변하고, 창작도 하고, 프로그래밍까지 도와줬다.

알트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AI의 가능성과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OpenAI를 AI 업계의 리더로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성공과 함께 비판도 따라왔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 "잘못된 정보를 퍼뜨릴 수 있다"는 지적 등이 계속 나왔다. 알트먼은 이런 우려들을 인정하면서도 "AI의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2023년 11월의 대사건

2023년 11월, OpenAI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이사회가 갑자기 알트먼을 CEO에서 해임한 거다.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고, 과정도 졸속이었다. 실리콘밸리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직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OpenAI 직원 95% 이상이 "알트먼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도 회사를 떠나겠다"는 서명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알트먼을 영입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5일 만에 알트먼이 복귀했다. 이사회도 완전히 교체됐고. 이 과정에서 알트먼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확인됐다. 그는 단순한 CEO가 아니라 OpenAI 그 자체였던 거다.

이 사건 이후 알트먼의 입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제 OpenAI 내에서 그의 리더십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인적인 면모와 철학

알트먼은 꽤 독특한 인물이다. 억만장자가 됐지만 라이프스타일은 의외로 검소하다. 비싼 차나 집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쏟는다.

개인적으로는 게이라는 걸 공개적으로 밝혔다. 2021년에 올리버 멀헤린이라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실리콘밸리에서는 꽤 화제가 됐다. 보수적인 업계에서 성소수자로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니까.

AI에 대한 그의 철학은 "신중한 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다. AI가 인류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인정한다. 그래서 "안전한 AI 개발"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특히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인간과 같은 수준의 AI가 나오면 세상이 완전히 바뀔 텐데,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미래에 대한 비전

알트먼은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ChatGPT 같은 제품을 넘어서, AI가 모든 산업을 바꿀 것이라고 본다.

특히 교육, 의료, 과학 연구 분야에서 AI의 활용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AI 개인 교사가 모든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고, AI 의사가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날 것은 아니라고도 한다. 기술적 한계도 있고, 사회적 수용성도 고려해야 하니까. 그래서 "점진적이고 안전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AI가 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일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불평등 문제도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UBI(기본소득) 같은 정책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비판과 논란들

알트먼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비판은 "AI 과대광고를 조장한다"는 거다. ChatGPT의 한계는 분명히 있는데, 마치 만능인 것처럼 포장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상업적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비판도 있다. 원래 OpenAI는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데, 지금은 그냥 일반적인 기술 회사와 다를 바 없다는 거다.

환경 문제도 지적된다.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이게 기후 변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다. 알트먼도 이 문제를 인정하고, 더 효율적인 AI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야심이 크다"는 평가도 있다. AGI 개발부터 핵융합 에너지까지,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다. 혹시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하려다가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다른 투자와 관심사

알트먼은 OpenAI 외에도 여러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핵융합 스타트업인 헬리온 에너지에 투자했다. "AI가 발전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바이오테크 분야에도 관심이 있다.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라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여기서는 노화 방지 연구를 하고 있다. 알트먼은 "AI와 바이오테크가 결합하면 인간의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부동산에도 투자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에 집이 있고, 최근에는 농장도 샀다고 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라고 하는데, 뭔가 의미심장하다.

마무리

샘 알트먼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느낀 건, 정말 시대를 잘 타고 난 사람이라는 거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위치 기반 서비스를, 스타트업 붐 때는 액셀러레이터를, 그리고 AI 시대에는 OpenAI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건 아니다. 매번 변화의 조짐을 일찍 포착하고, 과감하게 베팅하는 용기가 있었다. 스탠포드를 중퇴하고 창업한 것부터가 그런 성격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스케일"에 대한 집착이 인상적이다.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ChatGPT 같은 혁신을 만들어낸 원동력인 것 같다.

물론 비판도 있고 우려도 있다. AI가 정말 인류에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낼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알트먼이 이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앞으로 AI가 어떻게 발전할지, 그리고 알트먼이 또 어떤 혁신을 보여줄지 정말 궁금하다. 이미 충분히 성공했지만, 아직 39세밖에 안 됐으니까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