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구글 하면 보통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을 떠올리는데, 사실 구글을 지금의 거대기업으로 만든 사람은 에릭 슈미트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구글 CEO를 지내면서 회사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사람이거든. 처음에는 "나이 많은 어른이 젊은 창업자들을 도와주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도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인물이더라. 어떻게 기술 회사 경영의 전설이 됐는지 궁금해서 파봤다.
버지니아에서 자란 공학도
에릭 슈미트는 1955년 워싱턴 D.C. 근처 버지니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심리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미술 교사였다. 학문적인 분위기의 집안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 특히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걸 즐겼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해도 컴퓨터가 대중적이지 않았는데, 슈미트는 일찍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보였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성적도 우수했지만 무엇보다 실습을 좋아했다. 이론보다는 실제로 뭔가를 만드는 걸 선호하는 성격이었다.
1976년 프린스턴을 졸업한 후 UC 버클리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컴퓨터 사이언스로 전공을 바꿨는데, 당시 버클리는 컴퓨터 과학 분야의 최고 수준이었다. 박사 논문은 컴퓨터 네트워크에 관한 것이었다.
벨 연구소에서의 첫 직장
1982년 박사를 마친 후 슈미트는 벨 연구소에 입사했다. 당시 벨 연구소는 세계 최고의 기술 연구소였다. 트랜지스터, 레이저, 유닉스 같은 혁신적인 기술들이 모두 여기서 나왔거든.
슈미트는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일했다. 특히 분산 시스템과 네트워크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인터넷 시대에 큰 도움이 됐다.
벨 연구소에서 7년간 일하면서 여러 논문도 발표하고 특허도 몇 개 냈다. 하지만 점차 연구보다는 사업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술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1989년, 슈미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로 이직했다. 벨 연구소보다는 작은 회사였지만, 더 역동적이고 기업가적인 분위기였다.
썬에서 배운 경영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슈미트는 처음으로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이끄는 일이었는데, 이때부터 경영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자바 언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자바는 나중에 인터넷 시대의 핵심 기술이 됐는데, 슈미트는 이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부터 관여했다.
썬에서 몇 년 일하면서 슈미트는 기술과 사업을 연결하는 능력을 키웠다. 엔지니어들과 소통하면서도 비즈니스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됐다.
1997년, 슈미트는 노벨이라는 네트워킹 회사의 CEO로 이직했다. 처음으로 회사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였다. 당시 노벨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슈미트는 구조조정과 전략 변경을 통해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구글과의 만남
2001년, 슈미트에게 인생을 바꿀 제안이 들어왔다. 구글에서 CEO 자리를 제안한 거다. 당시 구글은 창업한 지 3년 된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만든 검색 엔진 회사였는데, 기술은 뛰어났지만 사업 모델이 명확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경험 있는 CEO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였다.
처음에 슈미트는 망설였다. 노벨에서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는데, 굳이 불확실한 스타트업으로 갈 이유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구글의 기술력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이 검색 기술은 정말 혁신적이다. 인터넷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1년 8월 구글 CEO가 됐다.
구글의 혁신적 성장
슈미트가 CEO가 됐을 때 구글 직원은 200명 정도였다. 매출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구글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있었다.
첫 번째 과제는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검색은 좋은데 돈을 벌 방법이 없었거든. 그래서 애드워즈라는 광고 시스템을 개발했다. 검색 결과에 맞춤형 광고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게 대박이었다. 광고주들은 정확한 타겟팅이 가능해서 좋아했고, 사용자들도 관련성 높은 광고라서 그리 거부감이 없었다. 구글의 매출이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구글이 상장했다. 상장 첫날 주가가 100달러를 넘었고, 회사 가치는 230억 달러에 달했다. 불과 3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20% 시간과 혁신 문화
슈미트의 가장 큰 공헌 중 하나는 구글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만든 거다. 특히 "20% 시간" 제도가 유명하다. 직원들이 업무 시간의 20%를 자유롭게 개인 프로젝트에 쓸 수 있게 한 거다.
이 제도에서 지메일, 구글 뉴스, 애드센스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들이 나왔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준 셈이다.
또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강조했다. 모든 결정을 감이나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리도록 했다. 구글의 엔지니어링 문화가 여기서 나온 거다.
구글 검색도 계속 개선했다.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을 발전시키고, 검색 속도를 높이고, 다양한 언어를 지원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구글을 쓰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와 모바일 진출
2005년쯤 되니까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슈미트는 모바일이 미래라는 걸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안드로이드라는 모바일 OS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07년 아이폰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지만, 슈미트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2008년 첫 번째 안드로이드 폰이 출시됐다.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로 만들어서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전략이 성공해서 지금은 전 세계 스마트폰의 70% 이상이 안드로이드를 쓰고 있다.
유튜브 인수도 슈미트 시절의 중요한 결정이었다. 2006년에 16억 달러를 주고 유튜브를 샀는데, 당시에는 "너무 비싸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보면 정말 좋은 투자였다.
구글의 글로벌 확장
슈미트는 구글을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사무실을 열고, 현지 인재들을 채용했다. 각 나라의 문화와 언어에 맞게 서비스를 현지화했다.
특히 중국 진출에 공을 들였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었지만 정부 규제가 까다로웠다. 슈미트는 중국 정부와 협상해서 구글 차이나를 설립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결국 철수해야 했다. 정부의 검열 요구가 구글의 철학과 맞지 않았거든. 2010년 구글은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그래도 다른 지역에서는 큰 성공을 거뒀다. 유럽, 아시아, 남미에서 구글의 점유율이 계속 올라갔다. 전 세계 사람들이 구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1년 CEO 물러나기
2011년 슈미트는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래리 페이지가 다시 CEO가 되고, 슈미트는 회장직으로 옮겼다. 10년간의 CEO 임기를 마감한 거다.
그가 CEO였던 동안 구글의 매출은 40배 이상 늘었다. 직원 수는 200명에서 3만 명으로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구글이 단순한 검색 회사에서 종합 기술 기업으로 발전했다. 검색, 광고, 모바일, 동영상, 클라우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슈미트는 "구글을 더 젊은 리더십에게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래리 페이지가 CEO가 된 후에도 구글은 계속 성장했다.
구글 이후의 활동
구글 회장을 지내다가 2017년에는 알파벳 회장이 됐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에서 전략적 역할을 담당했다. 2020년에는 완전히 은퇴했다.
요즘에는 투자와 자문 활동을 하고 있다.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대학에서 강연도 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국가 안보 분야에 관심이 많다.
국방부 자문도 하고 있다.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하고 있다.
책도 몇 권 썼다.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구글의 경영 철학과 혁신 문화에 대한 내용이다.
개인적인 면모
슈미트는 억만장자가 됐지만 생활은 비교적 검소한 편이다. 가족과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취미는 항공기 조종이다. 개인 제트기를 갖고 있고, 직접 조종해서 출장을 다니기도 한다. 기술에 대한 관심이 항공기까지 이어진 것 같다.
음악도 좋아한다. 특히 클래식을 즐겨 듣는데, 집에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고 한다.
요리에도 관심이 있다. 와인 컬렉션도 하고 있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디너 파티를 자주 연다고 한다.
내가 보는 에릭 슈미트
슈미트를 보면서 느끼는 건, 정말 균형 잡힌 리더라는 거다. 기술도 이해하고 비즈니스도 아는 드문 인물이다.
특히 구글의 성장 과정에서 보여준 전략적 사고가 인상적이다. 단순히 검색만 잘하는 게 아니라, 광고, 모바일, 클라우드까지 미리 준비한 게 대단하다.
기업 문화를 만드는 능력도 뛰어났다. 20% 시간 같은 제도는 지금도 많은 회사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중국 철수 같은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구글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만든 공로가 크다.
지금도 70세가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평생 학습하고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기술 리더의 모범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