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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 제국을 이어받은 3세 경영자

wanbonga 2025. 6. 20. 19:05

이재용
이재용

서론

삼성 하면 당연히 이재용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 최대 기업 그룹의 사실상 수장이니까.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감정이 든다.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거대 기업의 리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사법 리스크와 논란에 휘말린 인물이기도 하거든. 특히 최근 몇 년간 법정 출입이 잦아서 "또 이재용 뉴스네" 싶을 때가 많다. 그래도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인 건 분명하다.

재벌 3세로 태어난 운명

이재용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이건희 삼성 회장이고, 할아버지가 이병철 삼성 창업주니까 말 그대로 재벌 3세로 태어난 거다. 어릴 때부터 "삼성의 후계자"라는 운명이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이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이 교육에 엄격해서 일반 아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키웠다고. 물론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겠지만, 특별 대우는 별로 안 받았다는 얘기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성격도 조용하고 신중한 편이었다고. 아버지인 이건희와는 좀 다른 타입이었던 것 같다. 이건희는 카리스마 있고 강한 리더십을 보여줬는데, 이재용은 더 차분하고 분석적인 성향이었다고.

중고등학교는 경기고등학교를 나왔다. 한국 최고의 명문고 중 하나인데, 재벌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이기도 했다. 거기서도 성적이 좋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정말 삼성을 물려받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은 자유롭게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자신은 이미 길이 정해져 있다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1986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 경영학과나 경제학과가 아니라 동양사학과를 선택한 게 좀 의외였다. 아마 "역사를 통해 경영 철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었나 보다.

미국 유학과 글로벌 마인드 형성

1990년 서울대를 졸업한 후 이재용은 일본 게이오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1년 정도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배웠는데, 아마 삼성이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적을 알아야 한다"는 판단이었을 거다.

1991년부터는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 과정에 진학했다. 여기서 2년간 공부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특히 글로벌 비즈니스와 첨단 기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고.

하버드에서 만난 동기들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엘리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거든. 지금도 그때 인맥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MBA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기술 혁신"에 대한 수업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은 개인용 컴퓨터가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였는데, 이재용은 "앞으로 모든 산업이 IT와 연결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1993년 MBA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삼성에서 일을 시작할 차례였다. 당시 나이가 25세였는데, 삼성 임직원들에게는 "젊은 도련님"으로 보였을 거다.

하지만 이재용은 처음부터 특별 대우를 받지 않았다. 삼성 기획실에서 말단 직원으로 시작했는데,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야근하고 주말 근무도 했다고. 이건희 회장의 교육 방침이었던 것 같다.

삼성전자에서의 실무 경험

1995년부터는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에서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처음에는 정말 기초부터 배웠다고 한다. 반도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시장 상황은 어떤지, 경쟁사들은 뭘 하는지... 모든 걸 직접 발로 뛰면서 배웠다고.

특히 일본 출장을 자주 갔다고 한다. 당시 일본이 반도체 기술에서 앞서 있었는데, 경쟁사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거든. 이재용이 직접 현지에 가서 정보를 수집했다고.

차세대 리더로의 부상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재용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이 점차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이재용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기 시작한 거다.

2009년 삼성전자 COO(최고운영책임자)가 됐다. 실질적인 경영진 자리에 오른 거였는데, 당시 나이가 41세였다.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는 꽤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된 셈이다.

COO로 일하면서 이재용은 삼성전자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자고 주장했다. 2007년 아이폰이 나온 후 모바일 시장이 급변하고 있었거든.

2010년 갤럭시S가 출시됐을 때 이재용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아이폰을 따라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결국 갤럭시 시리즈가 세계 2위 스마트폰 브랜드가 됐다.

2012년에는 삼성전자 부회장이 됐다. 이제 정말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2인자가 된 거다. 이건희 회장은 회장직을 유지하면서도 실무는 대부분 이재용에게 맡겼다.

부회장이 된 후 이재용은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AI, IoT, 자율주행 같은 분야에 수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이 단순한 제조업체가 아니라 기술 기업이 돼야 한다"는 비전이었다.

2014년 이건희 회장 쓰러진 후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게 큰 전환점이었다.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가 되면서 삼성그룹의 경영 공백이 생긴 거다. 이재용이 사실상 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였다.

처음에는 정말 부담스러웠을 거다. 아직 정식으로 승계받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삼성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니까. 하지만 이재용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우선 삼성전자 경영에 집중했다. 반도체 사업은 계속 강화하고, 스마트폰은 애플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바이오, 자동차 부품 같은 분야에도 투자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정치권과의 관계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면서 각종 수사에 휘말리게 된 거다.

법정 투쟁과 경영권 승계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재용도 연루됐다. 삼성이 최순실 관련 재단에 돈을 지원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2017년 2월 구속되면서 정말 큰 충격이었다.

당시 "삼성 부회장이 감옥에?"라며 모든 언론이 난리였다. 삼성 주가도 많이 떨어졌고, 직원들도 동요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 후에도 계속 재판이 이어졌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불법 행위 의혹, 노조 와해 의혹 등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2021년에는 또 다시 실형을 받고 수감됐는데, 8개월 만에 가석방됐다.

법정 투쟁이 길어지면서 삼성그룹 경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요한 결정들이 지연되고, 투자도 미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재용이 없으면 아무도 결정을 못 내리는 구조였거든.

2020년 10월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이제 정말 이재용이 삼성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각종 법적 문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상속세 문제도 엄청났다. 이건희 회장의 유산에 대한 상속세가 12조원이 넘었거든. 이재용과 누나들이 어떻게 나눠서 낼지, 삼성 지분은 어떻게 할지... 모든 게 복잡했다.

최근의 경영 행보

2022년 가석방된 후 이재용은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준법경영을 강화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겠다는 거였다. 또한 ESG 경영에도 신경쓰겠다고 했다.

사업적으로는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이미 1위니까, 이제 비메모리 반도체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미국 투자도 늘리고 있다.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고, 바이든 정부와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본 거다.

삼성 제국의 현재와 미래

지금 삼성은 정말 거대한 기업 그룹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시가총액이 400조원이 넘고, 전체 그룹 매출은 연간 300조원이 넘는다. 한국 GDP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셈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정말 압도적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스마트폰도 애플과 함께 세계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과제도 많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도 불안정해졌다. 또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이재용은 이런 도전들에 대응하기 위해 "초격차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을 확보해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소통하는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예전처럼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아니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한다.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에 맞춰 변화하려는 것 같다.

환경 문제에도 신경쓰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차세대 승계 문제

이재용도 이제 50대 중반이니까, 언젠가는 차세대 승계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것 같다. 자녀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 어리고, 삼성에서 일한 경험도 없다.

일각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족 승계가 아니라 능력 있는 전문가가 경영하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아직 이재용이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당분간은 이재용이 삼성을 이끌어갈 것 같다. 법적 문제들이 어느 정도 정리됐고, 경영에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거든.

재벌 3세의 숙명

이재용을 보면서 느끼는 건, 정말 복잡한 인물이라는 거다. 한편으로는 한국 경제를 이끄는 거대 기업의 리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특혜와 논란에 휘말린 재벌 총수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화려한 생활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취미는 독서와 음악이라고 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억만장자지만 의외로 검소하게 산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워낙 주목받는 인물이라 사생활도 자유롭지 못할 거다. 어디 가든 기자들이 따라다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뉴스가 되니까. "재벌 총수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나중에 정권이 바뀔 때 문제가 될 수 있거든. 하지만 워낙 영향력이 크다 보니 정치권에서 계속 견제하려고 한다.

이재용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삼성을 글로벌 톱티어 기업으로 만든 거다. 이건희 회장 시대에 기반을 닦았다면, 이재용 시대에는 진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려놓은 거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의 성과가 대단하다.

물론 비판도 많다. 재벌 특혜, 불공정 거래, 노동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다. 하지만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무작정 비판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이재용이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지켜볼 일이다. 법적 문제들이 정리된 만큼, 이제는 정말 경영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삼성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