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해진, 네이버로 구글에 맞선 한국 검색의 아버지

wanbonga 2025. 6. 19. 20:57

이해진
이해진

서론

구글이 전 세계를 장악했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네이버가 1위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구글이 압도적인데 한국에서만 토종 검색엔진이 버티고 있거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사람이 이해진이다. 1999년에 네이버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한국 인터넷의 중심에서 구글과 맞서고 있다. 어떻게 KAIST 출신 공학자가 한국 최대 IT 기업을 만들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글로벌 거대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KAIST에서 시작된 검색의 꿈

이해진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회사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는데, 그냥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고 한다. 딱히 특별한 배경은 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고. 198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인데, 그때는 컴퓨터가 정말 희귀했다. 하지만 이해진은 일찍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보였다.

1986년 KAIST 전산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KAIST는 이공계 최고 대학이었고, 전산학과는 그 중에서도 정말 들어가기 어려운 과였다.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분야 자체가 새로운 시절이었거든.

대학 시절 이해진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특히 알고리즘이나 데이터베이스 쪽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검색엔진과 직접 관련된 분야들이었다.

1990년에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때부터 정보검색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아마 그게 네이버의 시작점이었을 거다. "어떻게 하면 방대한 정보 중에서 원하는 걸 빠르게 찾을 수 있을까"가 그의 평생 테마가 된 거다.

1992년 석사를 마치고 삼성 SDS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 SDS는 한국 IT 업계의 최고 직장이었다. 이해진도 그곳에서 시스템 개발이나 데이터베이스 관리 업무를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해진도 이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는 모든 정보가 인터넷으로 연결될 텐데, 그때 검색이 정말 중요해질 거다"라고 생각했다고.

1999년 NHN 창업, 그리고 네이버의 탄생

1999년 이해진은 삼성을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했다. 동료들과 함께 NHN(Next Human Network)이라는 회사를 만든 거다. 당시 나이가 32세였는데, 안정적인 대기업을 떠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다.

창업 아이템은 검색엔진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제대로 된 검색 서비스가 없었거든. 야후 코리아나 라이코스 코리아 같은 게 있긴 했지만, 한국어 검색은 형편없었다.

이해진이 생각한 건 "한국어에 특화된 검색엔진"이었다. 영어와 한국어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니까, 한국어만을 위한 검색 알고리즘이 필요하다고 본 거다. 지금 보면 정말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1999년 6월 네이버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단순한 검색 사이트였다. 디자인도 구글처럼 심플했고. 하지만 한국어 검색 품질은 기존 서비스들보다 훨씬 좋았다.

초기에는 사용자가 별로 없었다. 사람들이 "네이버가 뭐야?"라는 반응이었거든. 하지만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네이버 검색이 더 잘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2000년 닷컴 버블이 터졌을 때 정말 위험했다. 투자받기도 어려워졌고,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망했거든. 하지만 이해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검색은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지식iN의 혁신

2002년 네이버에 큰 변화가 왔다. 바로 지식iN 서비스를 출시한 거다. 이건 이해진의 아이디어였는데, "사람들이 직접 질문하고 답변하는 플랫폼"이었다.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기존 검색은 이미 있는 정보를 찾는 거였는데, 지식iN은 없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거였거든.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을 실현한 거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라는 의문이 많았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수천 개의 질문과 답변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정말 궁금한 걸 물어보고, 아는 사람들이 성실하게 답해줬다.

지식iN 덕분에 네이버 사용자가 급증했다. 검색할 것도 없이 네이버에 바로 질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다. "네이버에서 물어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포털의 완성, 그리고 구글과의 경쟁

2003년부터 이해진은 네이버를 종합 포털로 만들기 시작했다. 검색만 하는 게 아니라 뉴스, 쇼핑, 블로그, 카페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였다.

특히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가 큰 성공을 거뒀다. 2000년대 중반 "파워블로거"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블로그 문화가 활성화됐거든. 네이버가 그 중심에 있었다.

2004년 구글이 한국에 본격 진출했을 때가 진짜 위기였다. 전 세계에서 구글이 야후를 제치고 1위가 되고 있었거든. 한국에서도 "구글이 네이버를 이길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이해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만의 차별화 전략"을 더 강화했다. 구글이 심플한 검색에 집중한다면, 네이버는 종합 정보 서비스에 집중한 거다.

네이버의 메인 페이지는 구글과 완전히 달랐다. 뉴스, 날씨, 주식, 연예인 소식까지 모든 정보가 한 번에 보였다. 한국 사용자들은 이런 스타일을 더 선호했다.

또한 모바일 전환도 빨랐다. 2009년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하자마자 네이버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덕분에 모바일 시대에도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한게임과의 합병

2000년 NHN은 김범수가 운영하던 한게임과 합병했다. 네이버는 검색과 포털을, 한게임은 온라인 게임을 담당하는 구조였다. 이해진과 김범수가 공동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이 합병이 정말 성공적이었다. 네이버로 사용자를 모으고, 한게임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완성된 거다. 2000년대 중반 NHN은 한국 최대 인터넷 기업이 됐다.

하지만 2010년쯤 되니까 모바일 시대가 오면서 변화가 필요했다. 김범수는 카카오톡을 만들러 나갔고, 이해진은 네이버를 모바일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했다.

라인의 글로벌 도전

2011년 이해진에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바로 라인(LINE) 메신저를 출시한 거다. 당시 카카오톡이 한국에서 성공하는 걸 보고, "우리도 메신저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라인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타겟으로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무료 통화 수요가 급증했는데, 그 틈새를 노린 거였다.

라인의 성공은 정말 놀라웠다.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더니, 동남아시아까지 확산됐다. 특히 태국, 대만에서 1위 메신저가 됐다. 한국 IT 서비스가 해외에서 이렇게 성공한 건 처음이었다.

이해진은 라인을 통해 "글로벌 네이버"의 꿈을 키웠다. 일본에서 라인 뉴스, 라인 쇼핑, 라인 페이 같은 서비스들을 출시했다. 네이버의 성공 공식을 해외에 적용한 거다.

2016년 라인이 도쿄 증시와 뉴욕 증시에 동시 상장했을 때는 정말 자랑스러웠다. 한국 기업이 만든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거니까.

하지만 최근에는 어려움도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나 왓츠앱 같은 경쟁사들이 강해지고 있거든. 그래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다.

네이버 웹툰의 성공

2004년 네이버에서 시작한 웹툰 서비스도 이해진의 탁월한 판단이었다. 당시만 해도 만화는 책으로 보는 게 당연했는데, "인터넷에서 세로로 스크롤하면서 보는 만화"라는 새로운 포맷을 만든 거다.

처음에는 "인터넷 만화가 될까?"라는 의문이 많았다. 하지만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요일별 연재 시스템이 독자들의 습관을 만들어냈다.

지금 네이버 웹툰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다.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에서도 서비스하고 있고,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K-웹툰이라는 새로운 한류 콘텐츠가 된 거다.

AI와 미래 기술 투자

2010년대 후반부터 이해진은 AI 기술에 본격 투자하기 시작했다. "검색의 미래는 AI"라고 확신했거든. 클로바라는 AI 플랫폼을 개발해서 음성인식, 자연어처리 기술을 발전시켰다.

네이버 파파고 번역 서비스도 AI 기술의 산물이다. 구글 번역과 경쟁하면서 한국어 번역 품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특히 한국어-영어 번역에서는 구글보다 좋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에도 투자하고 있다. 네이버랩스를 만들어서 로봇, 자율주행, AR/VR 같은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10년 후를 준비하는 투자"라고 본인이 말하더라.

최근에는 하이퍼클로바X라는 대화형 AI를 출시했다. ChatGPT와 경쟁하는 한국어 특화 AI인데, 반응이 꽤 좋다. 역시 한국어 처리에서는 네이버가 강하다는 걸 보여줬다.

클라우드 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네이버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기업들에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는 건 쉽지 않지만, 한국 기업들은 네이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조용한 혁신가의 철학

이해진을 보면서 느끼는 건, 정말 조용하지만 끈질긴 사람이라는 거다. 김범수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마윈처럼 카리스마가 넘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왔다.

특히 "한국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구글이 전 세계를 장악했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네이버가 1위인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사용자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장기적 관점"도 인상적이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걸 주저하지 않는다. 웹툰이나 AI 같은 분야가 그런 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검소하게 산다고 한다. 억만장자가 됐지만 여전히 소탈하다고. 회사에서도 직원들과 격의없이 지낸다고 하더라.

취미는 독서와 클래식 음악이라고 한다. 기술서적도 많이 읽지만 인문학 책도 즐겨 읽는다고. "기술만으로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는 철학 때문인 것 같다.

가족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데, 가능한 한 가족과의 시간을 많이 갖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이해진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한국어 인터넷"을 만든 거다. 네이버가 없었다면 한국 인터넷 문화가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거다. 블로그, 카페, 웹툰, 지식iN... 이 모든 게 한국만의 독특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냈다.

물론 독점적 지위에 대한 비판도 있다. "네이버만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고.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 IT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평가받는다.

앞으로도 어떤 혁신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미 5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고 하니까.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을 만들면서도, 본인만의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것 같다.

구글에 맞서서 지금까지 1위를 지켜온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도 한국 검색의 아버지로서 계속 혁신을 이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