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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 브로드, 부동산으로 시작해서 예술로 완성한 인생

wanbonga 2025. 6. 10. 22:00

 

일라이 브로드
일라이 브로드

서론

요즘 미국 부동산 관련 뉴스 보다가 KB홈이라는 회사가 자주 나오더라. 그래서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이 회사 창업자가 일라이 브로드라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냥 부동산 사업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 인생이 정말 드라마틱하다. 부동산으로 시작해서 금융업까지 손대더니, 나중엔 예술 후원으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케이스다.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시작된 꿈

일라이 브로드는 1933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리투아니아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들이었는데, 그때 미국 온 유대인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별로 가진 게 없었다. 아버지는 페인트 가게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드레스메이커로 일했다. 그냥 평범한 이민자 가정이었던 거다.

브로드가 어릴 때부터 특별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돈을 벌고 싶다는 욕구가 남들보다 강했다는 거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고, 대학도 회계학과를 선택했다. 뭔가 실용적인 걸 배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면서 브로드는 부동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2차 대전 후 베이비붐이 일어나면서 주택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다. 브로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대에 시작한 부동산 사업

1956년, 브로드가 23세 되던 해에 드디어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작게 시작했다. 친구 도널드 카우프만과 함께 KB홈의 전신인 카우프만 앤 브로드를 설립했는데, 자본금이 고작 25만 달러였다. 지금 돈으로 치면 200만 달러 정도? 그것도 대부분 빌린 돈이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디트로이트 근처에 단독주택 몇 채를 짓는 거였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주택들이었다. 하지만 브로드는 여기서 중요한 걸 배웠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화려한 집이 아니라 적당한 가격에 살 만한 집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브로드는 처음부터 중산층을 타겟으로 했다. 너무 비싸지도 않고 너무 싸지도 않은, 적당한 품질의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금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에는 꽤 혁신적인 접근이었다.

KB홈으로 성장하기까지

1960년대 들어서면서 KB홈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브로드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거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이 성장해서 집을 사기 시작했고, 정부도 주택 정책을 통해 내집 마련을 지원하고 있었다.

브로드가 똑똑했던 건 단순히 집만 짓는 게 아니라 전체 과정을 통합적으로 관리했다는 점이다. 땅 매입부터 시작해서 설계, 건설, 판매까지 모든 걸 자체적으로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비용 절감도 되고 품질 관리도 쉬워졌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브로드가 마케팅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거다. 당시에는 부동산 광고라고 해봐야 신문에 작은 광고 정도였는데, 브로드는 TV 광고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KB홈에서 당신의 꿈을 실현하세요" 같은 슬로건도 그때 나온 거다.

1970년대 중반까지 KB홈은 미국 서부 지역에서 가장 큰 주택 건설업체 중 하나가 됐다. 연간 수천 채의 주택을 공급하는 수준이었으니, 브로드로서는 정말 대성공이었던 셈이다.

금융업 진출, 선아메리카의 탄생

1971년, 브로드는 또 다른 큰 결정을 내렸다. 선아메리카라는 보험회사를 인수한 거다. 당시 이 회사는 작은 지방 보험회사였는데, 브로드는 여기서 뭔가 가능성을 봤나 보다.

사실 이 결정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부동산 사업이 잘 되고 있는데 왜 보험업에 손을 대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브로드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부동산과 금융은 서로 연관이 깊고, 보험업을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거다.

결과적으로는 이 판단이 완전히 맞았다. 선아메리카는 브로드의 손에서 미국 최대 보험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이게 브로드의 재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선아메리카는 계속 성장했다. 브로드는 이 회사를 통해 다른 금융 상품들도 개발했고, 결국 종합금융서비스 회사로 키워냈다. 2021년 선아메리카가 매각될 때까지 브로드는 이 회사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예술에 눈을 뜨다

브로드의 인생에서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여기서부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는 그냥 전형적인 사업가였다. 돈 벌고, 회사 키우고, 또 돈 벌고... 그런 패턴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술에 푹 빠지기 시작한 거다.

처음에는 아내 에디스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에디스가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브로드도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술품을 접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취미로 끝나지 않았다. 브로드는 진짜로 예술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부터 브로드 부부는 본격적으로 예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팝아트 위주였는데, 점차 현대미술 전반으로 확장해나갔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제프 쿤스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했다.

그런데 브로드가 다른 부자들과 달랐던 건 단순히 수집만 한 게 아니라 예술가들을 직접 후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사주고, 전시회를 열어주고, 때로는 작업실까지 제공해줬다.

브로드 미술관과 교육 후원

2000년대 들어서 브로드는 더욱 적극적으로 예술 후원에 나섰다. 2015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브로드 미술관을 열었다. 건설비만 1억 4천만 달러가 들어갔는데, 브로드가 개인적으로 부담했다.

이 미술관이 정말 대단한 건 무료 입장이라는 거다. 보통 이런 규모의 미술관이면 입장료가 20-30달러는 하는데, 브로드 미술관은 완전 무료다. 브로드의 철학이 "예술은 모든 사람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였기 때문이다.

미술관 건물 자체도 정말 멋있다. 하디드 아키텍츠가 설계했는데, 마치 벌집 같은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내부는 2만 제곱미터 규모로, 브로드가 수집한 2천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브로드는 교육 분야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특히 공교육 개혁에 관심이 많았는데, 로스앤젤레스와 디트로이트의 공립학교들을 지원했다. 브로드 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교육 분야에만 수억 달러를 기부했다.

브로드의 사업 철학

브로드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이 말하는 그의 특징은 "끈기"와 "집중력"이다. 한 번 뭔가를 하기로 결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KB홈을 키울 때도 그랬고, 선아메리카를 성장시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는 타이밍을 보는 눈이 정말 좋았다는 거다. 부동산 사업을 시작할 때도 베이비붐이라는 대세를 정확히 읽었고, 보험업에 진출할 때도 미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금융 서비스 수요가 늘어날 걸 예상했다.

브로드는 또한 위험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부동산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 업종인데, 그래서 금융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 거였다. 한쪽이 어려울 때 다른 쪽에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춘 셈이다.

무엇보다 브로드가 대단한 건 평생 학습하는 자세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60대가 넘어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고, 예술 같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도 전문성을 쌓아갔다.

말년의 활동과 유산

브로드는 2021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특히 코로나19 시기에는 의료진 지원을 위해 개인적으로 큰 기부를 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재산은 대략 7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이다. 브로드 미술관은 지금도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로스앤젤레스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 됐고, 그가 후원한 많은 예술가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의 그의 기여도 만만치 않다. 브로드 재단이 지원한 학교 개혁 프로그램들은 많은 학생들의 인생을 바꿔놨다. 특히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한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브로드에게서 배우는 교훈

일라이 브로드의 인생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변화하는 모습이었다. 젊을 때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업가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인물로 바뀌어갔다.

특히 예술 후원은 단순히 세금 혜택을 위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문화 발전을 위한 거였다. 브로드 미술관을 무료로 운영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의 많은 부자들도 본받을 만하다.

또 하나는 평생 학습하는 자세다. 60대가 넘어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전문성을 쌓아간 건 정말 대단하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되기 쉬운데, 브로드는 오히려 더 개방적이 됐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관점의 중요성이다. 브로드는 단기간에 큰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꾸준히, 차근차근 사업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번 돈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마무리

일라이 브로드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느낀 건, 진짜 성공이 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는 거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이라면, 브로드는 이미 50대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의미 있는 일에 집중했다.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키우는 일 말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창업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브로드처럼 단계별로 성장해나가면서, 나중에는 사회에 기여하는 멋진 인물들이 됐으면 좋겠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브로드의 인생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