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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아이칸, 월스트리트를 떨게 한 기업 사냥꾼의 전설

wanbonga 2025. 6. 12. 09:00

칼 아이칸
칼 아이칸

서론

예전에 회사에서 경영 관련 세미나를 들었는데, 강사가 "기업 레이더"라는 용어를 썼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까 "칼 아이칸 같은 투자자들"이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 이 사람 이름을 들었는데, 알고 보니 월스트리트에서는 정말 유명한 인물이었다. 기업들이 가장 만나기 싫어하는 투자자라고도 불린다는데, 그만큼 무서운 사람인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에 이 사람 이야기를 좀 파보기로 했다.

뉴욕 서민 가정에서 자란 소년

칼 아이칸은 1936년 뉴욕 퀸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유대인 이민자 가정이었는데, 아버지는 칸토르(유대교 성가대 지휘자)로 일했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그냥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아이칸은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특히 수학을 잘했는데, 체스도 꽤 잘 뒀다고 들었다. 나중에 그의 투자 스타일을 보면 정말 체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 식이니까.

고등학교 졸업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했다. 철학을 전공했는데, 이게 좀 의외다. 보통 금융업 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철학 공부가 나중에 논리적 사고력에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뉴욕대 의대와 군 복무

프린스턴 졸업 후 아이칸은 뉴욕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의사가 되려고 했던 모양인데, 2년 만에 그만뒀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적성에 안 맞았던 것 같다. 의대는 정말 공부량이 많고 스트레스도 심하니까.

의대를 그만둔 후에는 군에 입대했다. 1960년대 초반이니까 베트남 전쟁 전이었지만, 징병제가 있었거든. 군에서는 예비역 장교로 복무했는데, 여기서 리더십을 배웠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친 후 아이칸은 뭘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의사도 포기했고, 다른 특별한 기술도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삼촌의 소개로 월스트리트에서 일해보기로 했다.

월스트리트 첫 발걸음

1961년, 아이칸은 드레셀 번햄이라는 증권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말단 중개인이었는데, 하루 종일 전화를 받으며 주식 거래를 중개하는 일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콜센터 직원 같은 거였을 거다.

하지만 아이칸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숫자에 강했고, 시장 흐름을 읽는 눈이 있었다. 게다가 고객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어서 영업 실적도 좋았다. 몇 년 만에 상당한 수수료를 벌어들이게 됐다.

그런데 아이칸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독립해서 자기 사업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1968년, 32세의 나이에 자기 회사를 차렸다. 아이칸 앤 컴퍼니였다.

옵션 거래의 귀재

아이칸 앤 컴퍼니를 설립한 초기에는 주로 옵션 거래에 집중했다. 당시 옵션 시장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규제도 느슨했다. 아이칸은 여기서 기회를 봤다.

옵션 거래는 위험하지만 수익률이 높다. 아이칸은 복잡한 옵션 전략을 구사해서 꾸준히 수익을 냈다. 특히 차익거래에 뛰어났는데, 같은 주식이라도 시장마다 가격 차이가 있으면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아이칸은 이런 식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게임을 원했다. 단순히 주식 거래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기업을 직접 움직이고 싶어했던 거다.

첫 번째 적대적 인수, 타펜 컴퍼니

1974년, 아이칸은 생애 첫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다. 타펜 컴퍼니라는 요리기구 제조업체였는데, 주가가 자산 가치보다 훨씬 낮게 거래되고 있었다. 아이칸은 여기서 기회를 봤다.

아이칸은 조용히 타펜 주식을 모으기 시작했다. 주가가 오르지 않도록 조금씩, 여러 계좌를 통해서 매수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지분을 확보한 후에 경영진에게 "회사를 매각하거나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타펜 경영진은 당연히 반발했다. 하지만 아이칸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주총회에서 이사진 교체를 추진하고, 언론을 통해 경영진을 압박했다. 결국 타펜은 아이칸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사건으로 아이칸은 월스트리트에서 유명해졌다. "기업 레이더"라는 별명도 이때 생긴 거 같다. 기업들은 아이칸이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하면 긴장했다.

1980년대, 황금기의 시작

1980년대는 아이칸에게 황금기였다. 레이건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M&A가 활발해졌고, 아이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연달아 큰 성공을 거뒀다.

1985년 TWA 항공사 인수가 가장 유명한 사례다. 당시 TWA는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아이칸은 이 회사를 인수해서 구조조정했다. 불필요한 노선을 정리하고, 인력을 줄이고, 자산을 매각했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회사를 살린 셈이었다.

텍사코 석유회사 사건도 화제가 됐다. 텍사코가 게티 오일을 인수하려고 할 때, 아이칸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주가를 올린 거다. 결국 텍사코는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했고, 아이칸은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필립스 페트롤리움과의 대결

1984년 필립스 페트롤리움 사건은 아이칸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아이칸은 이 석유회사의 대주주가 되어서 회사 분할을 요구했다. 그런데 필립스 경영진이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자 아이칸은 더 공격적으로 나갔다. 프록시 파이트(주주총회 의결권 쟁탈전)를 벌이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영진을 비판했다. 심지어 "필립스를 완전히 해체해서 주주들에게 돈을 돌려주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필립스는 아이칸과 타협했다. 회사 일부를 매각하고, 특별 배당을 지급하기로 한 거다. 아이칸은 이 과정에서 수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적대적 M&A의 철학

아이칸의 투자 철학은 간단했다. "주주 가치 극대화." 경영진이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주주들이 나서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에는 꽤 급진적인 사고였다.

아이칸은 기업의 잠재 가치를 파악하는 눈이 뛰어났다. 주가는 낮지만 자산 가치가 높은 회사, 경영이 비효율적인 회사, 분할하면 더 가치가 높아질 회사 등을 골라냈다.

그리고 일단 타겟을 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였다. 경영진의 반발이나 언론의 비판에 굴복하지 않았다. "나는 주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물론 비판도 많았다. "기업을 해체해서 단기 이익만 추구한다", "직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같은 비판들 말이다. 하지만 아이칸은 "비효율적인 기업을 그대로 놔두는 게 더 문제"라고 반박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변화하는 시장

1990년대 들어서 시장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방어 체계가 강화되고, 규제도 까다로워졌다. 아이칸도 전략을 조정해야 했다.

이 시기에 아이칸은 좀 더 우호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나가는 대신, 경영진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물론 대화가 안 되면 여전히 강경하게 나갔지만.

2000년대에는 아이칸 엔터프라이즈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여기서는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에 투자했는데, 전통적인 제조업부터 에너지, 기술 분야까지 정말 폭넓었다.

타임워너와의 대결

2006년 타임워너 사건도 유명하다. 아이칸은 이 미디어 거대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수한 후, 회사 분할을 요구했다. 타임워너가 너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주주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에도 경영진은 반대했다. 하지만 아이칸은 포기하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논리를 설명하고,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타임워너는 일부 자회사를 분사하고 주식 환매를 늘리기로 했다. 아이칸의 요구가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진 거다.

애플과의 인연

2013년, 아이칸은 애플 주식을 대량 매수해서 화제가 됐다. 당시 애플은 현금을 너무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는데, 아이칸은 이 돈을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팀 쿡 CEO와 여러 차례 만나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공개적으로는 우호적인 분위기였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압박이 있었을 거다.

결국 애플은 주식 환매와 배당을 대폭 늘렸다. 아이칸은 이 과정에서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2016년에는 애플 주식을 모두 매도했는데, 중국 시장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활동과 현재 상황

최근 몇 년간 아이칸은 예전만큼 공격적이지는 않다. 나이도 있고(현재 87세), 시장 환경도 많이 바뀌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은 에너지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다. 석유 정제업체인 CVR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고, 다른 에너지 관련 기업들에도 투자하고 있다. 기후 변화 이슈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청정에너지 분야 투자도 늘리고 있다.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의 자산 규모는 현재 200억 달러가 넘는다. 개인 순자산도 17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정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셈이다.

아이칸의 투자 원칙

오랜 세월 아이칸을 지켜본 사람들이 말하는 그의 투자 원칙은 이렇다. 첫째,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라. 둘째, 경영진이 문제가 있으면 바꿔라. 셋째, 끝까지 밀어붙여라.

또한 아이칸은 항상 "실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투자하기 전에 그 회사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 재무제표는 물론이고, 경영진의 과거 이력, 업계 동향, 경쟁사 상황까지 모든 걸 파악했다.

리스크 관리도 철저했다. 한 기업에 모든 돈을 걸지 않고, 여러 투자처에 분산했다. 그리고 손실이 나면 빨리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비판과 논란

아이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비판은 "단기 이익만 추구한다"는 거다. 기업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당장의 주가 상승에만 관심이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일자리 파괴자"라는 비판도 있다. 아이칸이 개입한 기업들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거든. 물론 아이칸은 "비효율적인 일자리를 없애는 게 전체적으로는 도움이 된다"고 반박하지만.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을 받는다. 석유 관련 사업에 투자가 많아서, 기후 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청정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개인적인 삶

아이칸의 개인적인 삶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결혼을 두 번 했는데, 현재 부인은 게일 골든이다. 자녀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다.

뉴욕 맨해튼에 아파트가 있고, 플로리다에도 집이 있다. 요트도 소유하고 있는데, 이름이 "패스트넷"이라고 한다. 빠른 수익을 추구하는 자신의 투자 스타일을 반영한 이름인 것 같다.

취미는 테니스와 포커라고 한다. 테니스는 젊을 때부터 쭉 해왔고, 포커는 투자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좋아한다고. 상대방의 심리를 읽고 베팅하는 게 주식 투자와 비슷하다는 거다.

후배들에게 남긴 조언

아이칸은 젊은 투자자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시장을 이기려고 하지 마라. 시장을 이해하려고 해라." 단순히 주가만 보고 투자하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가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인내심을 가져라"라고도 했다. 좋은 투자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회가 오면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가져라"라는 조언도 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 평범한 수익밖에 낼 수 없다.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

마무리

칼 아이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느낀 건, 정말 독특한 인물이라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주주들에게는 영웅이지만, 경영진들에게는 악역이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아이칸 때문에 기업들이 주주 가치에 더 신경 쓰게 됐고, 비효율적인 경영이 줄어들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아이칸 같은 투자자가 있으면 어떨까? 물론 문화적 차이 때문에 똑같은 방식은 어려울 거다. 하지만 주주 권익 보호나 기업 지배구조 개선 같은 측면에서는 배울 점이 있을 것 같다.

8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이칸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어떤 투자를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