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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 캘러닉, 우버로 세상을 바꾸고 쫓겨난 남자

wanbonga 2025. 6. 16. 09:45

트래비스 캘러닉
트래비스 캘러닉

서론

우버 타면서 가끔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택시 잡기가 이렇게 어려웠는데, 이제는 스마트폰 몇 번 터치하면 차가 온다. 이 혁신을 만든 사람이 트래비스 캘러닉이라는 미국 사람인데, 정말 흥미로운 인물이다. 우버로 전 세계 교통을 바꿔놓고는 결국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거든.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갈린 케이스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해서 파봤다.

LA에서 자란 반항아

트래비스 캘러닉은 197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토목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광고업에서 일했다.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독특했다.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잘 안 들었다고. 부모님도 키우기 힘들어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머리는 좋았다. 수학이나 과학 쪽에 재능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1990년대 초반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가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캘러닉은 프로그래밍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런데 공부보다는 돈 버는 데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했는데, 단순히 용돈 때문이 아니라 사업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UCLA에서의 창업 경험

1994년 UCLA에 입학해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수업보다는 창업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당시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기였거든.

1998년, 대학 3학년 때 첫 번째 회사를 만들었다. 스컬(Scour)이라는 파일 공유 서비스였는데, 음악이나 동영상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사이트였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사용자들이 열광했고, 트래픽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최고 때는 월 방문자가 수천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저작권 침해였다. 음반사들과 영화사들이 스컬을 고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0년에 회사가 망했다. 캘러닉은 파산 신청을 해야 했다.

레드스우프와 두 번째 도전

스컬이 망한 후 캘러닉은 잠시 좌절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1년에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름이 레드스우프(Red Swoosh)였다.

레드스우프는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회사였다. 기업들이 동영상이나 소프트웨어를 더 빠르게 배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였다. 스컬의 기술을 합법적으로 활용한 거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닷컴 버블이 터진 직후였고, 투자받기가 어려웠다. 캘러닉은 몇 년간 정말 고생했다고 한다. 사무실도 제대로 없었고, 직원들 월급도 제때 못 줬다.

그래도 끈질기게 버텼다. 점차 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2007년에 아카마이라는 회사에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1900만 달러였는데, 캘러닉은 몇 백만 달러 정도 벌었다고 한다.

우버의 시작

레드스우프를 판 후 캘러닉은 잠시 쉬면서 다음에 뭘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2008년 겨울, 파리에서 친구인 개럿 캠프와 함께 있을 때 우버 아이디어가 나왔다.

당시 파리에서 택시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기다리는 게 짜증났던 거다. 그때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아이디어 정도였다. 하지만 캠프가 계속 추진했고, 2009년에 우버캡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만 운영했다.

초기에는 고급 리무진 서비스였다. 일반 택시가 아니라 흑색 세단을 앱으로 부르는 서비스였다. 가격도 비쌌지만, 편리함 때문에 사용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공격적인 확장 전략

2010년 캘러닉이 CEO가 되면서 우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성격답게 공격적인 확장을 시작한 거다. 다른 도시로 빠르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캘러닉의 전략은 간단했다. "빠르게 들어가서 시장을 장악하라"였다. 경쟁사보다 먼저 시장에 들어가서 1등을 차지하는 게 목표였다. 이를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2011년에는 우버X를 출시했다. 일반인들이 자기 차로 운전기사를 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이게 우버의 진짜 혁신이었다. 택시 독점을 깨뜨린 거니까.

하지만 당연히 기존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우버 금지 시위가 일어났고, 정부들도 규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캘러닉은 밀어붙였다.

그레이볼과 논란들

우버가 성장하면서 캘러닉의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그레이볼"이라는 프로그램이 문제가 됐다. 단속 공무원들에게는 가짜 앱을 보여주는 시스템이었다.

또한 경쟁사들을 견제하는 방법도 과격했다. 라이벌 회사 직원들을 빼오려고 하거나, 경쟁사 서비스를 방해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하나둘씩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도 터졌다. 2017년 한 직원이 블로그에 우버 내 성희롱 실태를 폭로했는데, 이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우버의 "브로 컬처"가 비판받기 시작했다.

캘러닉 개인의 행동도 문제가 됐다. 우버 기사와 말다툼하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고, 직원들 앞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일도 있었다.

투자자들의 압박

2017년 들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연이은 스캔들로 우버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사용자들이 우버 삭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거였다. 특히 벤치마크 캐피털 같은 주요 투자사들이 캘러닉의 사퇴를 요구했다.

2017년 6월, 결국 캘러닉은 CEO에서 물러났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셈이었다. 당시 우버의 기업가치는 700억 달러 정도였는데, 캘러닉의 지분만 해도 수십억 달러 가치였다.

우버 이후의 삶

CEO에서 물러난 후 캘러닉은 한동안 조용히 지냈다. 2018년에는 우버 주식 대부분을 팔았다. 약 25억 달러 정도 받았다고 한다.

그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클라우드키친스라는 회사인데, "고스트 키친" 사업을 하고 있다. 배달 전용 주방을 임대해주는 사업이다.

부동산 쪽에도 투자하고 있다. 특히 LA 지역 부동산을 많이 사들였다고 한다. 시티블록이라는 부동산 개발 회사도 만들었다.

스타트업 투자도 하고 있다. 10100펀드라는 벤처펀드를 만들어서 초기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있다.

개인적인 면모

캘러닉은 원래 독신주의자였는데, 2018년에 비올라 캠프벨이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2019년에 아들도 태어났다. 가정을 꾸리면서 많이 변했다는 얘기가 있다.

취미는 농구와 등산이다.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고, 지금도 친구들과 자주 한다고 한다. 등산은 스트레스 해소용인데, LA 근처 산에서 자주 하이킹을 한다.

음식에도 관심이 많다. 클라우드키친스 사업을 하면서 요리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집에서 직접 요리도 자주 한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별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다. 우버 CEO 시절 트럼프 정부와 갈등이 있었던 적이 있어서,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같다.

논란과 비판

캘러닉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혁신가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독재자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큰 비판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다. 우버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면 법적 그레이존을 이용하거나, 불공정한 방법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비판이다.

또한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도 문제가 됐다. 과도한 성과 압박을 가하고, 인간적인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캘러닉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혁신을 위해서는 때로 파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기존 시스템을 깨뜨리려면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우버에 미친 영향

캘러닉이 물러난 후 우버는 많이 변했다. 새로운 CEO인 다라 코스로샤히가 회사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9년 우버가 상장했을 때 시가총액은 820억 달러였다. 캘러닉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낮았지만, 여전히 엄청난 가치였다. 캘러닉의 남은 지분만 해도 수십억 달러 가치였다.

지금 우버는 전 세界 70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캘러닉이 깔아놓은 기반 위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캘러닉의 우버 모델은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에어비앤비, 리프트 같은 공유경제 회사들이 모두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다.

내가 보는 트래비스 캘러닉

캘러닉을 보면서 느끼는 건, 정말 극단적인 인물이라는 거다. 혁신과 논란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타입이다.

분명히 세상을 바꾼 사람이다. 우버가 없었다면 지금의 공유경제도 없었을 거다. 택시 산업의 독점을 깨뜨리고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준 건 큰 공헌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다. 법을 무시하고, 직원들을 혹사시키고, 경쟁사를 부정한 방법으로 견제한 건 분명 문제다.

결국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건 아이러니하다. 우버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속가능한 리더십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캘러닉 없이는 우버도 없었을 거다. 그 정도로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좋든 싫든 21세기 초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 중 한 명인 건 분명하다.

앞으로 클라우드키친스 같은 새로운 사업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지, 아니면 더 성숙한 리더가 될지 지켜보는 게 흥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