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실리콘밸리 하면 보통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유명한 인물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피터 틸이라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라고 불린다. 무슨 진짜 마피아는 아니고, 페이팔 출신들이 나중에 다 성공해서 실리콘밸리를 좌지우지하게 됐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 중심에 피터 틸이 있다.
하지만 다른 성공한 사업가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 철학을 전공했고, 사업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철학자 사업가'라고도 불린다.
독일에서 시작된 방랑의 어린 시절
피터 틸은 196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화학 엔지니어였는데, 광산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그래서 피터도 어릴 때 정말 많이 이사를 다녔다. 무려 7번이나 초등학교를 바꿨다고 한다.
특히 남아프리카에서 살 때는 독일어 학교에 다녔는데, 교복을 입어야 하고 체벌도 있었다. 학생들 손을 자로 때리는 그런 학교였다. 이때 경험이 피터 틸에게 큰 영향을 줬다. 획일화된 교육과 권위주의를 정말 싫어하게 됐다.
1977년에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정착했는데, 피터는 어릴 때부터 좀 특별했다. 던전 앤 드래곤 같은 게임을 좋아했고,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SF 소설도 즐겨 읽었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남달랐던 것 같다.
스탠퍼드에서의 철학 공부
1989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학위를 받았다. 르네 지라르와 레오 스트라우스 같은 철학자들을 공부했다고 한다. 1992년에는 로스쿨까지 졸업했다. 머리가 정말 좋았던 모양이다.
졸업 후에는 연방항소법원에서 서기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뉴욕의 유명한 로펌 설리번&크롬웰에서 변호사로 일했는데, 딱 7개월 3일 만에 그만뒀다. 정확한 날짜까지 기억한다는 게 재미있다.
그 다음에는 크레디트스위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동시에 미국 교육부에서 대변인 일도 했다. 하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나 보다. 1996년에 서부로 다시 돌아왔다.
투자자로서의 첫 발걸음
서부에 돌아온 뒤로는 인터넷과 PC의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딴 틸 캐피탈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그리고 루크 노섹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게 투자자로서의 첫 걸음이었다.
당시 인터넷 붐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피터 틸은 남들보다 일찍 이 기회를 포착했다. 특히 온라인 결제 시스템에 주목했다. 인터넷 상거래가 발달하려면 안전한 결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페이팔 창업과 성공
1998년, 피터 틸은 맥스 레브친, 루크 노섹과 함께 페이팔을 창업했다. 전자결제 시스템 회사였다.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페이팔의 CEO로서 회사를 이끌었는데, 정말 힘든 시기였다. 닷컴 버블 붕괴로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망했지만, 페이팔은 살아남았다. 2002년에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페이팔 마피아'라는 전설이 시작됐다. 페이팔 출신들이 나중에 각자 다른 회사들을 창업하거나 투자해서 모두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스페이스X, 리드 호프만의 링크드인, 채드 헐리의 유튜브 등등.
페이스북에 대한 혜안
2004년, 피터 틸은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페이스북에 5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당시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 기숙사에서 만든 작은 SNS에 불과했다.
하지만 피터 틸은 이 서비스의 잠재력을 알아봤다. 페이스북의 첫 번째 외부 투자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페이스북 이사로도 활동했다. 2012년에 자신의 지분 대부분을 10억 달러 이상에 매각했다. 정말 대박이었다.
팰런티어 창업과 빅데이터 시대
같은 해인 2004년, 피터 틸은 또 다른 회사를 창업했다. 바로 팰런티어 테크놀로지다. 빅데이터 분석 회사였다. 컴퓨터를 활용해 국가 안보나 글로벌 금융 분야에서 애널리스트들을 돕는 일을 한다.
팰런티어는 좀 특별한 회사다. 주요 고객이 CIA, FBI, 국방부 같은 정부 기관들이다.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거나 금융 범죄를 수사하는 데 사용된다. 어떻게 보면 좀 무서운 회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터 틸은 이런 기술이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빅데이터의 힘으로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운더스 펀드와 투자 철학
2005년에는 파운더스 펀드라는 벤처캐피털을 설립했다. 페이팔 동료들인 켄 하우어리, 루크 노섹과 함께 만든 회사다. 이 펀드를 통해 수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스페이스X, 에어비앤비, 옐프 등 지금은 모두 유명한 회사들이다. 특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파산 위기에 있을 때 투자해서 살려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피터 틸의 투자 철학은 독특하다. "0에서 1로"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회사에 투자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기존 것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회사들 말이다.
교육에 대한 도전적인 시각
피터 틸은 미국 교육 시스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특히 대학 교육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1년에 '틸 펠로우십'이라는 장학금 제도를 만들었다.
이 장학금의 조건이 정말 파격적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하는 학생들에게 10만 달러를 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피터 틸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실제 사업을 하면서 배우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 중에서 성공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모두가 성공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교육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정치적 성향과 트럼프 지지
피터 틸은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이다.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했다. 125만 달러를 기부하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이게 좀 의외였다. 실리콘밸리는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하는 곳인데, 피터 틸은 반대편을 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더 이상 미국이 혁신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트럼프의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에 공감했던 것 같다.
독특한 미래관과 투자 전략
피터 틸의 사고방식은 정말 독특하다. 다른 사람들이 경쟁에 매달릴 때, 그는 독점을 추구한다. "경쟁은 패배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투자 전략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분야에서 기회를 찾는다. 해상도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해상도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독립적인 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기존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사회를 실험해보자는 아이디어다. 많은 사람들이 황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피터 틸은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다.
고커 미디어와의 전쟁
2016년에 피터 틸이 한 일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이 있다. 고커 미디어를 파산시킨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헐크 호건의 소송을 뒤에서 지원한 것이었다.
고커는 미국의 대표적인 가십 미디어였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헐크 호건의 성관계 동영상을 공개했다가 소송을 당했는데, 피터 틸이 헐크 호건의 변호사 비용을 댔다.
결국 고커는 1억 4천만 달러 배상 판결을 받고 파산했다. 피터 틸이 이런 일을 한 이유는 고커가 예전에 자신을 공개적으로 아웃팅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부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론사를 파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 틸은 "최고의 자선 활동이었다"고 자평했다.
AI와 수명 연장에 대한 관심
피터 틸은 인공지능과 수명 연장 기술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틸 재단을 통해 이런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노화를 질병으로 보고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수명 연장 연구를 하는 여러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언젠가는 인간이 불멸에 가까운 수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입장이다. AI의 발전이 인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인정한다. 그래서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와 미래의 피터 틸
현재 피터 틸의 순자산은 약 208억 달러로 추정된다.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순위 103위에 올라 있다. 여전히 팰런티어의 회장이고, 여러 벤처캐피털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뉴질랜드에 12일밖에 머물지 않았는데도 시민권을 받았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아마 미래에 대한 대비책인 것 같다.
2024년 선거에서는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와는 거리를 두는 모양이다.
독특한 사업 철학 '제로 투 원'
피터 틸이 쓴 책 '제로 투 원'은 그의 사업 철학을 잘 보여준다. 0에서 1이 되는 것, 즉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기존의 것을 개선하는 것은 1에서 n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0에서 1로 가는 것, 즉 아예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혁신이고, 진정한 가치 창조라는 것이다.
경쟁보다는 독점을 추구하라는 것도 그의 핵심 메시지다. 완벽한 경쟁 상태에서는 아무도 수익을 낼 수 없다. 진정한 성공은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에서 나온다.
실리콘밸리의 이단아
피터 틸은 확실히 실리콘밸리의 이단아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민주당을 지지할 때 공화당을 지지하고, 모든 사람이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대학을 중퇴하라고 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역발상적 사고가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의 투자 성과를 보면 이런 철학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 페이팔, 페이스북, 팰런티어, 스페이스X 등 모두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였지만, 지금은 세상을 바꾼 회사들이 되었다.
미래를 향한 끝없는 도전
피터 틸은 지금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우주 개발, 인공지능, 생명 연장, 암호화폐 등 모든 분야에서 혁신적인 회사들을 지원한다.
그에게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위험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몽상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의 과거 성과를 보면, 그의 몽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해상도시든, 불멸의 기술이든, 언젠가는 실현될 수도 있다.
피터 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앞으로 어떤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낼지, 어떤 미래를 열어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확실한 것은 그가 계속해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